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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 정보 출연진 실제 사건 기록 영화

by 아시빠 2024. 1. 29.

1. 서울의 봄 줄거리

 이 영화는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 17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단행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이야기 합니다.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 내 사조직을 총 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입니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을 막기 위해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을 비롯한 진압군이 맞서게 되며 목숨을 건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으로 대한민국 수도에서 치열한 전쟁이 펼쳐 진다는 내용입니다.

2. 서울의 봄 출연진

황정민(전두광), 정우성(이태신), 이성민(정상호), 박해준(노태건), 김성균(김준엽)

 

3. 역사적 배경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 17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단행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중에 제4공화국의 두 번째 정부인 최규하 정부가 출범했다.

1979년 12월 6일 최규하 정부는 긴급조치를 해제하여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긴급조치에 의해 처벌받은 재야 인사들을 복권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유신 체제가 끝나고 민주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다. 윤보선 등 시민사회 원로는 대통령 최규하에게 유신헌법 폐지 및 민주적 선거를 요구했다.

1980년 3월 개강과 함께 학생들은 다른 시위 구호와 함께 '어용 교수 퇴진'을 외쳤다. 어용 교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난 대학은 3월 말까지 모두 18개교였으며 참가자만 8천여 명에 달했다. 이에 김옥길 문교부 장관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어용한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교수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른바 '학원(學園) 민주화 투쟁'이 시작되었다.

학원 민주화 투쟁 와중인 4월 9일에 성균관대학교에서 '병영집체훈련 거부 사건'이 일어났다. 유신정권 시기부터 당시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들어가 열흘간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박정희가 죽고 민주화 바람이 불자 학생들은 당연히 이 불합리한 훈련에 반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병영집체훈련의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과 시위가 다음 입소 차례였던 서울대와 서강대 등 여러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4월 24일 서울 14개 대학 361명의 교수들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사학의 족벌체계 비판, 군사교육 개선책 모색, 재임용제도 철폐, 교수회의 기능 강화, 대학별 교수협의회 구성 등 대학교육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해직되었다.


1980년 5월 여야는 같은 달 20일 국회를 열어, 계엄령 해제와 유신헌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5월 1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 일정 제시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청하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월 초부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했다. 1980년 5월 15일 오후 1시경 남대문에서 학생시위대가 버스를 탈취하고 전투경찰을 향해 돌진,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해 수명이 부상하고 1명의 경찰이 사망했다. 이에 신군부는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5월 20일 예정된 임시국회를 무산하고 국보위를 설치해 군부 주도로 정국을 이끌어나갔다. 군부는 5월 17일 단행된 조치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고, 이로써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후로 12ㆍ12사태의 진상은 12·12사건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며 비밀로 묻혀 있다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자는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김영삼 정부가 사실 규명에 나서 사법적 심판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로 규정되었고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ㆍ노태우는 구속되었지만,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4. 개인적인 평

 한국 근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보는 관객수도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아픈 역사와 지금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육사 출신들로 모여 만들어진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어떻게 반란을 했는지와 당시 육군본부 장군들의 비겁함과 무기력함,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그리고 반란군에 맞서 싸웠던 장병들의 헌신과 군인정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12/12를 일으켰던 반란군들은 아직도 역대지휘관으로 사진이 올라와 있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라 생각하며 강력 추천 합니다.